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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사용기

라이카 Q로 느낀 흑백 사진의 깊이

by photogearlab 2026. 1. 10.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흑백사진을 '구 시대 유물'이라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색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컬러를 지워버리는 이유에 공감하지 못했지 때문이다. 내가 라이카에 확신을 갖게 된 계기 역시 라이카 렌즈들이 보여주는 뛰어난 발색 덕분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흑백 사진의 매력을 안다. 아니, 아는 것을 넘어 완전히 빠져버려 심지어 흑백만 찍히는 카메라를 갖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한다. 어쩌다 나는 이 무채색의 세계에 매료되었을까.

 

지하철 출구를 나가기 위해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한 여성. 컬러가 사라진 흑백 사진이라 출구를 통해 살며시 들어오는 빛이 계단을 오르는 여성을 비춘다
컬러로 남겨두었으면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빛에 집중되지 않았을 사진. 흑백으로 편집하니 사진의 매력이 살아났다.

 

라이카의 정수, '경조흑백'

라이카 유저들 사이에는 '경조흑백'이라는 말이 있다. 라이카의 풍부한 계조를 활용해 하이라이트는 강하게, 그림자는 아주 어둡게 표현하는 고대비(High Contrast) 흑백 사진을 의미한다. 라이카의 흑백사진을 대표하는 대명사 같은 말이다. 실제로 라이카로 촬영된 흑백 사진들을 보면 타 브랜드보다 명부와 암부의 대비가 강렬하면서도 그 사이의 단계가 촘촘하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날, 라이카 Q로 한 브랜드의 에디토리얼 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후보정 단계에서 문득 '흑백으로 돌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실행에 옮겼고, 그 순간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아, 이게 라이카가 이야기하는 경조흑백인가?"

 

풍부한 다이내믹 레인지 덕분에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대비가 명확히 살아있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사실, 라이카 Q(Typ 116) 모델에는 '경조흑백' 모드가 따로 없다. 그저 후보정에서 컬러를 빼고 계조를 조정했을 뿐인데, 원본 데이터가 머금고 있던 힘이 워낙 좋아 압도적인 결과물이 나왔던 것이다.

 

어느 한 통로 공간. 창문의 프레임 모양의 그림자가 바닥에 반복적으로 만들어져 있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는 흑백사진.
라이카의 흑백은 창문의 프레임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잘 느껴지면서도 실내 공간의 공간감까지 잘 대비를 이룬다

 

빛에 집중하니 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장르

흑백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시각의 확장이다. 컬러라는 눈을 사로잡는 소음을 제거하자, 사진의 본질인 '빛과 '형태'에 온전히 집중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빛의 방향과 그림자의 모양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을 뜻하는 'Photography'의 어원을 타고 올라가면 결국 빛(Phos)과 그리기(Graphos)가 만난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예술이라는 뜻이다. 빛에 집중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사진 실력도 향상되었다. 이제는 내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일부러 흑백으로 돌려본다. 색을 걷어내고 빛의 형태만 남겨보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원인이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사진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제 나는 주저 없이 "흑백부터 시작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흑백 사진집을 읽고 분석하며 빛을 이해하는 것은 사진 실력을 키우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자전거 거치대에 한 자전거는 세워져 있고 다른 한 자전거는 쓰러져있다. 두 자전거를 위에 가로등의 불빛이 비추고 그 아래 각각의 모양아 따라 그림자가 만들어지고 있는 흑백사진
흑백 사진을 찍은 뒤 햇빛이 아닌 형광등과 같은 인공광이 만들어내는 빛에도 집중하게 됐다

 

라이카로 흑백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

앞에서도 언급했듯 라이카 Q나 M-P(TYP240) 같은 디지털 초창기 모델들에는 전용 경조흑백 모드가 없다. 하지만, 나름의 흉내를 낼 방법은 있다.

 

  1. JPG 설정 : 채도를 흑백으로 바꾸고 대비(Contrast)를 '고(High)'로 설정한다.
  2. 후보정: 라이트룸에서 흑백 버튼으로 변환한 후 계조를 세부적으로 조정한다.

이 중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컬러는 RAW(DNG)로, JPG는 흑백으로 설정해 두 가지 모두 저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촬영 현장에서는 LCD를 통해 흑백의 미학에 집중할 수 있고, 나중에 RAW 파일을 열어 컬러로 다시 마주할 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다. 하나의 필름에 피사체를 담아내는 필름 바디와 달리 저장매체에 저장하는 디지털 바디의 장점이다. 

 

벽돌 벽 앞에 주변 조형물로 인해 삼각형의 모양만 햇빛이 비추고 나머지는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흑백사진으로 둘 간의 대비가 잘 표현된 사진이다.
컬러로 찍은 후 라이트룸 후보정을 통해 흑백으로 편집한 사진

 

지독한 고집이 만들어낸 '모노크롬' 모델

라이카는 참 흥미로운 브랜드다. 똑같은 라인업 안에서도 흑백 촬영만 가능한 '모노크롬(monochrom)' 모델을 따로 내놓는다. 처음에는 "그 비싼 돈을 주고 왜 흑백만 되는 카메라를 살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다. 라이카 Q, Q2, Q3까지 모두 모노크롬 모델이 있다. 심지어 디지털 M바디에도 있다. 흑백 사진의 매력을 아는 나는 이제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여유만 된다면 나도 꼭 한 대 사고 싶다.

 

나아가 LCD조차 없는 M-D 모델에도 마음이 간다. 디지털카메라에서 화면을 없애고 오로지 촬영자의 감각에만 의존하게 만드는 그 지독한 콘셉트를 가진 모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부품이 빠졌는데 가격은 더 비싸다. 하지만 불필요한 모든 것을 걷어내고 오로지 '셔터를 누르는 행위' 즉,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하려는 라이카의 의도를 생각하면, 라이카의 철학이 담겨서 비싼가 싶기도 하다. 참고로, M-D모델은 M10, M11 시리즈에서만 만날 수 있다.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라이카 M10 모노크롬 바디의 후면을 촬영한 흑백사진. LCD 창에는 흑백 사진으로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라이카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라이카 M10 모노크롬 모델 사진

 

화려함 뒤에 숨은 본질을 마주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화려한 것들에 속아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사진에 있어서 '컬러'는 가끔 그런 속임수 같은 역할을 한다. 눈을 사로잡는 감성적인 색감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그 색을 존재하게 만드는 근간인 '빛의 농도'와 '사물의 질감'과 같은 사진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뎌지기 마련이다. 

 

색을 걷어낸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삭제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빛을 드러내는 일이다. 앞으로도 빛이 가지는 중요성과 사진의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무채색의 기록을 하지 않을까 싶다. 화려한 색채를 걷어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진실된 형태를 마주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